충남 홍성군 앞바다 천수만은 바다의 호수. 서해로 뭉툭 솟아나온 태안반도의 밑자락으로 기다란 안면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물은 언제나 멈춘 듯 고요하다.
이렇게 가둬진 천수만 바다는 천혜의 산란지다. 생명의 원천인 뻘을 품고 있고 물살이 잔잔해 물고기들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데 제격인 곳. 태평양의 수많은 물고기들이 이곳을 산란장소로 삼고 있어 천수만과 그 입구 주변은 물 반 고기 반의 최대 어장이다.
그 천수만의 한 복판 홍성 땅에 크지 않은 항이 있으니, 많은 이들이 맛의 항구 미항(味港)으로 주저 없이 손꼽는 남당항이다. 포구의 해변은 바다와 나란한 좁은 도로를 따라 횟집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지난 가을 ‘새우의 귀족’ 대하로 들썩였던 이 거리는 찬바람이 불자 또다시 새 희망에 달떴다. 바로 ‘조개의 명품’ 새조개 때문이다.
지난주 남당항에서 개막된 제4회 새조개 축제가 주말 휴일을 맞아 겨울 별미를 맛보려는 미식가들과 관광객 등 많은 인파가 몰려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축제장을 찾은 미식가들과 관광객들은 가족, 연인들과 함께 천수만 새조개의 쫄깃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며 한가로운 휴일을 보냈으며 일부 관광객들은 축제장에 마련된 ‘새조개 목걸이 만들기’, ‘새총으로 새조개를 잡아라’ 등 체험행사에 참여해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야구공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뭉툭한 새조개는 속살의 발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11월부터 3월말까지가 제철로 수심 5~35m의 뻘과 모래가 섞인 곳에서 자란다.
형망틀을 이용해 배가 끌면서 뻘 바닥을 긁어 건져 올린다. 양식이 불가능한 100% 자연산으로 나는 곳이 한정되고 맛이 뛰어나 값이 높다.
새조개가 천수만에 둥지를 튼 것은 오랜 일이 아니다. 1983년께 천수만 A,B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새조개가 발견되기 시작했으니 20년이나 되었을 정도이다.
“바지락을 캐다 보니 주먹만한 이상한 조개가 걸립디다. 처음엔 무슨 조갠지 몰라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니 새조개라고 하네요.” 남당리 신건식(51) 어촌계장의 설명이다. 자갈밭이던 천수만 바닥에 방조제 공사로 황토가 흘러들었고, 유속도 많이 낮아져 새조개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새조개는 미식가 일본인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어패류다. 새조개 속살로 만든 초밥을 즐겨 먹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량을 일본에 수출했다. 우리의 경제가 성장하고 식도락에 눈 뜨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국내 소비할 물량도 소화하기 힘든 실정이다.
남당항의 횟집거리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식당 50여 곳과 ‘파라솔’이라 불리는 간이 포장집 100여 곳이 마주보고 있다. 포구의 규모에 비해서는 횟집수가 상당하다.
남당항은 남당리 인근의 어획량뿐만 아니라 천수만 전체 수산물의 집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하를 비롯해 새조개도 남당의 유명세에 한몫 한다.
새조개를 먹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날것 그대로의 회와 매콤한 양념무침, 그리고 샤브샤브다. 식당가 ‘현주네 파라솔’의 안주인은 샤브샤브를 권했다. 새조개 속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그 국물에 라면이나 칼국수를 끓여 먹으면 배도 든든하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샤브샤브는 팽이버섯, 무, 대파와 바지락 몇 알로 국물을 낸다. 내장을 제거한 새조개를 끓는 육수에 살짝 담갔다 꺼내 입에 물었다. 연한 속살의 부드러움이 스르르 입안을 녹인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다른 조개와 달리 갯냄새도 나지 않고 달콤하다. 자극적으로 진하지 않으면서 은근하고 고급스러운 맛. 남당리 주민들이 새조개를 ‘조개의 명품’이라고 자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샤브샤브는 살짝만 데쳐 오래 씹어야 제 맛이다. 오래 익히면 질겨지기 때문이고 씹으면 씹을수록 더욱 달콤해진다. 새조개를 건져낸 국물은 그야말로 진국이다. 이 시원하고 달큼한 국물에 끓여먹는 라면 맛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한편 제4회 새조개 축제는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 일원에서 오는 3월 4일까지 한 달간 계속되며 행사기간 동안에는 축하공연, 노래자랑과 각종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