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소복이 눈이 쌓여 있을 때 찾아가면 좋다. 돌로 쌓은 성벽과 우아한 기와지붕 위에 눈이 쌓인 풍경은 시선을 사로잡고, 뽀도독 눈길을 밟는 느낌은 걷는 맛을 더한다. 지난 주말, 강설이 예보된 가운데 밤사이 내린 눈을 맞으러 남한산성에 오른다.
중원구 은행동 유원지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설국 등반은 추운 겨울이 감각에 없고 오로지 눈꽃에 취해 잠시 감각이 어지러운데 어느덧 남문이다. 성벽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걷다보면 제법 운동이 되기 때문에 은근히 숨이 차고 땀도 난다. 땀을 느끼는 것도 잠시 여기저기 눈경치를 살피면서 설산이 주는 백설의 신비로움과 가끔씩 마주치는 등산객들 모두가 넉넉히 편하고 따뜻한 모습에 눈과 함께 한 인간의 본 모습을 모처럼 읽어 내렸다. 이어진 수어장대길 산책로는 곳곳이 산성과 함께한다. 남한산성에는 '한성 백제시대'부터 우리 겨레와 운명을 함께해 온 2000년 역사가 숨 쉬고 있다.
도착한 수어장대에서 이곳의 역사를 다시한번 되새기는데 수어장대는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청나라를 오랑캐 국가라 하여 인정하지 않고 45일동안 저항하다 항복한 뒤 청나라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국을 자처한 곳이라 한다. 일명 서장대로 불리기도 하는 수어장대(守禦將臺). 산성에서 가장 높은 일장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원래 단층이었던 것을 영조가 2층으로 짓게 했다. 바깥쪽의 편액이 수어장대, 안쪽이 무망루(無忘樓)이다. 무망루란 병자호란때 인조가 겪은 시련, 효종이 볼모로 잡혀가 겪은 8년간의 고통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영조와 정조는 여주의 효종릉을 참배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이곳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며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를 되새겼다고 한다.
수어장대의 한쪽 편에서는 모 등산 모임에서 한해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가졌는데 간절한 소망을 담은 제문도 준비하고 약소하지만 정성껏 제수도 마련해서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픈 역사를 잠시 뒤로 미루면 15만 평에 이르는 성곽 주변의 대자연 경관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어장대에 오르자 서울시와 함께 하남시 인근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성곽으로선 더 없이 좋은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씁쓸한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채, 겨울눈의 포근 그리고 봄꽃의 생동 여름날의 환희 가을의 넉넉함과 함께 남한산성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산을 하면서 눈꽃에 흠뻑 반해 백색의 환한 웃을 지었습니다. 자연의 힘이 빚어낸 눈꽃에 대한 감탄이다. 누구나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눈에 대한 공감이 있어서 그럴것이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눈꽃에 흠뻑 반해 백색의 환한 웃음을 지었다.
주말 눈과 함께한 남한산성은 자연의 힘이 빚어낸 눈꽃에 대한 감탄이었다.
강한신문 스포츠성남 박석빈 기자